한국이 싫어서
처음에는 도피였지만 나중에는 자유로움이었다.
--
- 뚜렷한 목표같은게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아. 아무도 쫓아오지 않으니까 도망갈 필요 없어.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질거야. 그래도 불안하면 위험을 감수해. 모험은 위험할수록 좋거든.
- 행복이라는 말이 과대평가 된 것 같아.
- '지금'이 힘든 누군가에게는 약간의 고민상담을 할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하는 동시에 계나의 선택이 유일한 답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다보고 나서 쓰는 리뷰
다행이다. 비록 시작은 도피성으로 갔을지 모르지만 뉴질랜드에서 계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알던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고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 마음을 모아서 진짜로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서 떠났다. 아래 구구절절 쓴 나의 얘기가 민망할 정도로 내가 바라는 모습이어서 다행이다.
영화를 반만 보고 먼저 쓰는 구구절절 써보는 느낌(계나가 뉴질랜드에서 다른 사람에게 방 보여주는 장면까지 봄)
영화를 쭉 보면서 드는 생각은 계나는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경쟁상회에서 살아가기'가 힘들어서 떠난 것으로 느껴진다. 이는 계나 스스로도 톰슨 가젤에 비유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남자친구 지명의 말처럼 외국으로 가면 무언가 달라지는가? 하면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이다. 그러면 외국으로 가지 말고 그렇게 싫은 한국에서 꾸역꾸역 버티면서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고 사는게 맞는거냐? 라고 묻는다면 그 대답 또한 '아니, 외국으로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라고 답할 것이다.
나는 부잣집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부족함 없이 자랐다고 생각하고 인서울 대학을 나와서 나름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이라고 하는 회사를 다니고 부족함없이 생활을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부족함이 없다'라는 것은 남들이 보는 기준에서 일수도 있겠지만 철저히 나 스스로 생각하는 기준이다. 우리 부모님은 비록 지금 노후 준비가 안되어 있으시고 내가 결혼할 때 돈을 보태주시기 힘들었지만 내가 어릴 때 자식들에게 힘들다는 소리 없이 자식들이 원하는걸 다 해주시며 장사를 하시면서 아이들을 키우셨다. 대학교에서부터는 스스로 알바를 하고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를 하고 돈을 벌었고 운이 좋게도 대기업에 들어가서 꽤나 많은 월급을 받으면서 사치를 하고 넓은 집에 살지는 못하지만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여행가고 싶을 때 돈 모아서 가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 이렇게 살아오면서 나는 전혀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다. 더 욕심을 낸 적도 없고,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지도 않았고 할 필요도 없었고, 지금 현재에 재밌는 것을 좇으면서 그게 행복이라 믿으면서 살아왔다.
내가 이런 말 하기에는 영화 속 주인공 계나와 같은 현실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또는 이 영화를 보면서 정말 공감을 할 수 있는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누군가에 공감대 형성을 못해서 주제 넘는 소리로 들릴 수 있긴 하겠지만 나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개인이 스스로 지금의 상황에서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나도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는 너무나 경쟁이 과열되어 있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나를 맞추도록 되어있고, 나 스스로 남들과 비교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이 되어 있고,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고, 어렵게 구한 일자리에서 노동을 하면서 번 돈으로 나의 안락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 힘든 사회가 되었다는 것에 동의한다. 이런 모든 것들이 한데 뒤섞여서 시궁창같은 현실때문에 '한국'이 싫어지고 '한국사회'가 싫어지고 '한국문화' 싫어지고 '한국에서의 생활'이 싫어져서 '한국'을 떠나고 싶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마음 먹기에 따라서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돈. 돈이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돈이 없어서 불행하려면 당장의 한끼에, 내일의 한끼를 고민할 정도가 아닌 이상 돈으로 불행할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절대적으로 돈이 많으면 더 행복해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최소한의 돈이 최대한 불행을 피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런 최소한의 돈을 가지고 있다면 또는 벌고 있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면 뭐가 문제가 될 수 있을까. 힘든 직장생활? 연인과의 관계? 잘 풀리지 않는 진로? 이것들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고 그 시간 속에서 나의 선택들이 해결을 도와줄 것이다. 지금 힘들다고 느끼는 그 상황과 감정이 10년 뒤에도 똑같이 힘들 것인가?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극 중에서 친구 경윤이 행복 전도사를 보고 와서 얘기한다. 행복은 모으는 거라고. 그렇다. 행복은 네잎클로버 처럼 찾는 것이 아니다. 모으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소소하게 느끼는 작은 행복한 기억들을 모아서 그 힘으로 살아가면 된다. 그리고 그 힘이 모이면 좀 더 자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행복한 기억들을 모아놓지 않으면 행복한 기억을 모을 수 있는 원동력이 점점 줄어든다. 언제 행복을 느꼈는지를 모르니까. 불행은 확실하게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행복은 저마다의 기준이 다르기에 누군가에게 행복은 누군가에게 행복이 되지 않을수도 있다. 그러니 적당한 행복에 적당히 만족하면서 그 기억들을 모아나가야 한다.
말이 옆으로 많이 새긴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정말 정말 돈이 없어서 한끼를 걱정해야 되는 정도가 아니라면 지금의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불투명한 미래가 걱정되고 앞이 보이지는 않을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아가다 보면 누구나 행복해 질 수 있다. 이건 정상이 어딘지 모르고 올라가는 산과도 같고, 골인지점이 없는 기나긴 마라톤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견뎌내야 한다. 그리고 그 견뎌내는 힘은 무작점 참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나의 과거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계나가 뉴질랜드로 떠난 것에 대해서 비난하지 않고 응원한다. 그곳에서도 한국과 다르지 않게 힘들 것이다. 오히려 더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게임 캐릭터 타섭에서 새로 키우듯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 타지에서의 새로움과 기대감, 작게 성취하는 성공들 이 모든 경험들은 그곳에서 영주권을 취득해서 계속해서 살아가든 다시금 한국에 돌아와서 살든 계나의 인생에 큰 뿌리가 되어 버팀목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느끼고 모으는 나의 감정들과 생각들이 중요한 것이다.
제발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기준으로 살았으면 한다. 누군가를 평가하는 기준이 돈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 행동이 되었으면 한다.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고 좋은 감정을 쌓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아 나도 구구절절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는 것을 보니 머리 꽤나 굵어졌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