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 위에서 만나는 신뢰의 즐거움
∙ 글쓴이 : 알폰소 링기스 ∙ 옮긴이 : 김창규 ∙ 출판일 : 2014.07.18 ∙ 출판사 : 오늘의 책 ∙ 카테고리 : 인문 > 철학 > 교양철학 ∙ 플랫폼 : 리디북스 ∙ 독서기간 : 2022/09/11 ~ 10/14 ∙ 독서별점 : 3.0/5.0
목차
✏️ 한줄 소감
📍 인상 깊은 구절들
✓ 일단 누군가를 신뢰하기로 마음먹으면 우리의 정신 속으로 평안함뿐 아니라 자극과 흥분이 파고 들어온다. 신뢰란 다른 생명체와 맺어지는 관계 가운데 가장 큰 기쁨을 준다.
✓ 신뢰란 대담하면서도 아찔하고 탐욕스럽다.
✓ 협곡을 돌아다녀 보자. 햇빛이 비추면 우리의 시선은 바깥 공간으로 무한하게 뻗어 나가는 밝은 투명함 속으로 뛰쳐 나간다. 눈은 우리 자신에게서 떠나고 골짜기의 벽들 사이로 뛰어다니면서 바위를 뒤지고 균열 속의 현란한 색채를 탐색하며, 나비타에 사람들이 골짜기 벽에 새긴 파사드를 찾아다니고 그 모든 것을 통찰로 만들어버린다. 우리의 시선은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고, 그런 통찰로부터 무언가를 추출하지도 않는다. 이와 같은 통찰 앞에서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력을 상실하고, 스스로 직감의 무아경과 하나가 된다.
✓ 그는 자신을 신뢰하기 때문에 미지의 상황이 닥쳤을 때 대처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지식보다는 자신에 대한 신뢰에 더 의지한다. 누군가가 그를 신뢰하기 시작하면 그 신뢰는 더 많은 신뢰를 만들어낼 뿐이다. 다른 사람이 그를 신뢰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힘은 자신에 대한 그의 신뢰를 내부적으로 지배적인 힘으로 만들어주며, 불안함과 망설임을 날려버리게 만든다.
✓ 신뢰는 두 사람을 더 튼튼하게 연결해준다. 신뢰는 점점 더 강해지고 중독성이 심해지는 에너지다
✓ 도저히 개선할 수 없느 상태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어쩔 수 없는 일들 역시 존재한다. 웃는 것 외에는 다른 대책이 없는 일들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하지만 최소한, 언제든지 웃는 건 가능하다
✓ 진실이란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넘어선 것을 보는 것이며, 차마 보기 힘든 것을 보는 것이며,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넘어선 것을 보는 것이다.
📝 독후감
💬 도입(책 선정 이유, 전반적인 느낌 등)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라는 책의 인용문에서였다.
“일단 누군가를 신뢰하기로 마음먹으면 우리의 정신 속으로 평안함 뿐 아니라 자극과 흥분이 파고들어온다. 신뢰란 다른 생명체와 맺어지는 관계 가운데 가장 큰 기쁨을 준다.”
<여행의 이유> 책을 재밌게 읽고 있을 때 이런 문장을 발견하니 강한 인상을 받았다. 저 문장과 제목만으로도 흥미가 생기는 책이었기에 독서희망목록에 고이 추가를 해놓았었다. 그러다 최근에 몽골을 가면서 리디북스에서 책을 구매해서 읽기 시작하여 드디어 완독을 했다.
우선 위의 문구는 책의 초반 머리말에 적혀 있었다. 머리말에서는 신뢰, 용기, 웃음, 성적 매력의 공통점과 유사성에 대해서 작가의 생각이 적혀 있었다. 머리말을 읽으면서 책을 읽기 전 가졌던 기대감이 좀 더 커졌다. 뭐랄까 ‘신뢰’라는 자주 쓰이면서도 무겁고 중요한 단어에 대해서 잘 풀어낸 얘기들이 공감이 되고 새겨듣게 된다고나 할까.
“신뢰란 대담하면서도 아찔하고 탐욕스럽다”
💡 책을 읽고 느낀 점(떠오른 생각/아이디어/질문)
하지만 책을 읽기 전 가졌던 기대감과 머리말을 읽으면서 증폭된 기대감은 책의 본문을 읽어나가면서는 하나씩 줄어들고 사라졌다…물론 이건 늘 그렇듯이 책을 읽고 이 감상문을 쓰는 나의 입장에서 느낀 것이기에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내가 아직 글에서 영감을 받고 핵심을 꿰뚫는 능력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고, 어쩌면 진짜 본문 자체는 그닥 별로인 거일 수도 있고..
책의 본문은 작가가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쓴 기행문의 형식이다. 주로 기행문의 형식이긴 하지만 어떤 챕터는 단편 소설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 그 지역에 실제 있었던 일을 조금 다르게 풀어낸 내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내용들 자체가 내게는 큰 감흥이 없었다. 그저 내용들 사이에서 문장 하나하나가 와닿는다면 밑줄을 치기는 했지만 챕터의 내용 자체가 좋아서 빠져들면서 읽는다는가, 그 지역에서의 여행에 대한 설명을 읽고 나니 나도 그곳을 가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 이미 가보고 싶은 곳 중에 한 곳이긴 했지만 ‘파사드’라는 챕터를 읽고 나서 요르단의 페트라가 좀 더 궁금해졌으니 앞에 말은 취소해야 될까나.
시각을 담당하는 우리의 눈이 페트라에 와서 경험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시각의 절정이다.
무튼 너무 단호하게 얘기하긴 했지만 2~3개 정도의 챕터를 제외하고는 끝까지 읽기가 힘들어서 겨우겨우 끝내려고 하는 듯한 느낌을 읽으면서 완독을 했다.
가끔 이런 책(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작품들도 포함)을 읽을 때면 늘 드는 생각이 있다.
‘나만 이 책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이 책의 문구를 인용한 작가도 책을 다 읽고 나서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진짜 책은 별로인데 그냥 그 문구 하나가 정말 잘 짜여지고 적혀서 인용되는걸까?’
‘정녕 그렇다면 이 책에서 인용구를 발췌한 사람들은 이 책을 다 읽고 어떤 생각을 가질까?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도 좋은 문구 하나를 건져서 좋았다? 또는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한번 더 읽어볼까?’
비록 내게는 별로고 구리고, 또는 남들도 별로라고 하는 작품을 접하게 되더라도 내가 그 작품 속에서 뭔가를 느끼고, 배우고, 얻어가는 것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게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책의 감상문을 끝내본다.
📚 관련 책들
● 알랭드 보통 『 여행의 기술』 - 링크
🖍 밑줄 친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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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난에 대해 완벽히 묘사해 놓은 글을 읽어봤다 해도 눈으로 직접 보는 순간 그것은 충격이고 놀라움이며 새로운 발견이다.
-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그들이 나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사회적 지위나 몸동작, 복장, 그리고 머리 모양 등을 상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자주 깨닫는다 ~ 하지만 그들이 보는 이미지 속에는 진정으로 생각하고 자유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나 자신은 따로 있는 것이다.
-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은 알고 있는 지식을 넘어서서 진정한 그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 일단 누군가를 신뢰하기로 마음먹으면 우리의 정신 속으로 평안함뿐 아니라 자극과 흥분이 파고 들어온다. 신뢰란 다른 생명체와 맺어지는 관계 가운데 가장 큰 기쁨을 준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하는 즐거움을 누릴 때면 위험이라는 요소와 함께 신뢰도 생겨나며, 그 결과 즐거움은 환희의 경계를 향해 치닫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 우리 앞에 죽음이 등장하면 우리 자신의 깊은 곳 어딘가에서 용기가 솟아오른다. 본연의 죽음이 다가올 때 우리를 의연하게 만들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것이 용기라는 이름의 힘이다.
- 용기와 신뢰는 공통점이 있다
- 용기는 우리의 예상, 기대, 희망이 산산이 부서질 때 솟아올라서 단단해지는 힘이다. 솟아오른 용기는 자리를 잡고 제 힘으로 자라난다. 그리고 신뢰란 죽음만큼이나 동기를 짐작할 수 없는 어떤 인물에게 의지하게 만드는 힘이다. 낯선 이를 신뢰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대상을 신뢰한다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다. 신뢰와 용기가 불어넣어 주는 흥분은 서로 구분하기가 어렵다
- 웃음과 성적인 매력 또한 심상이나 개념을 꿰뚫고 오가는 힘이다. 웃음은 대화 도중에 돌발적으로 모순이 발생하거나, 의미가 어긋나거나, 어색하고 서투른 노력이 목격되거나, 공들여 달성하려던 목표가 사라질 때 터져 나온다. 대폭소란 활동에 추진력과 기술을 제공하던 과거가 단절되는 순간에 터지고, 말과 행동에 의미와 목적을 제공하던 미래와의 연결이 끊어지는 순간 터져 나온다. 그 순간에 남는 것은 현재 뿐, 그리고 발가벗겨져 무의미 해진 사물과 격렬한 몸짓이다. 그리고 웃는 사람의 과도한 에너지가 남을 뿐이다. 그 에너지는 적나라하게 드러난 본질에 부딪혀 튕겨 나오면서 폭소의 원동력이 된다.
- 웃음에는 전염성이 있다.
- 성적인 충동은 치장과 가장이라는 기교를 통해 야기된다.
- 성적 갈망 또한 익명성을 띠며 전염되고, 우리가 서로에게 솔직하게 만들어준다.
- 웃음과 성적인 갈망은 이미지나 개념, 사물의 이름 등을 꿰뚫고 유일한 실재와 직접 접촉한다는 점에서 용기 및 신뢰와 유사하다
- 신뢰 안에는 용기 뿐 아니라 기쁨과 유쾌함도 들어있다. 신뢰는 위기가 닥쳤을 때 웃게 해준다. 그리고 성적인 매혹도 신뢰와 아주 흡사하다. 누군가에게 성적으로 푹 빠지면 한없이 끌려가게 되듯 무조건적인 신뢰도 마찬가지다. 역으로 신뢰에도 성적인 면이 있다. 왜냐하면 신뢰는 타인의 알 수 없는 핵심에 집착하는 맹목적인 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뢰는 타인의 감정 및 영향력과 연결된다.
- 신뢰란 대담하면서도 아찔하고 탐욕스럽다.
아라오유안
- 인간의 관심사나 나의 개인적인 여행은 지질학적인 시간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 3개의 제식용 잔에 민트차를 담아 내주었다. 첫번째 차는 죽음처럼 썼다. 두 번째는 삶처럼 부드러웠고 세 번째는 사랑처럼 달콤했다.
- 신성 모독의 충동은 종교 그 자체에 이미 내포되어 있다. 종교는 성지를 인정할 뿐 새로 만들지는 않는다. 바로 그런 방식으로 종교는 신성 모독을 저지른다.
- 신성 모독이 바로 종교적인 활동이다.
- 아라오유안을 비롯해서 바빌론, 이집트, 콘스탄티노플, 쿠스코의 고대 신을 학살하고 불에 태운 것은 종교에 헌신하는 인간들이다. 사원이란 다른 종교의 사원에서 약탈한 자원으로, 다른 종교의 사원을 부순 자리 위에 짓게 마련이었다.
- 종교는 ‘절대’라는 이름의 차원을 열어 놓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고통은 언제나 잘못된 것이며 상대적이다. 종교는 이것을 절대의 영역으로 올려놓는다.
- 우리는 우주론과 천문학을 발전시킨 끝에 우리 개인이나 문명이나 인간 종의 수명을 훨씬 넘는 우주적 시간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 그에 반해서 우리가 우주 속에서 스스로에게 부여할 수 있는 의미는 무한에 가까운 비율로 줄어들고 있다.
노리아의 노래
- 인도에는 만트라라고 부르는 음이 있다. 만트라는 인간의 목소리로 골라 두었다가 다시 밖으로 내보내는 우주의 소리인데, 특히 몸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안으로 끌어들이다 보면 마침내 소리가 사라지고 만트라가 몸 안에 울려퍼지면서 우리 몸이 내던진 거친 목소리들이 한데 모여 조화를 이룬다.
파사드
- 이 지역을 방문하면 당신도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눈은 바로 이런 광경을 보기 위한 기관이다. 우리는 눈을 통해 스스로를 볼 수 없고, 자신의 눈 자체도 볼 수 없으며, 자신의 몸 전체를 볼 수도 없다. 가까이에 있는 도구나 장애물에, 소유할 수 있는 어떤 대상에 시선을 고정하면 우리의 눈은 약해지고 구속당한다. 거리감각이란 먼 곳에 있는 위대한 것을 감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눈은 몽상가이다.
- 협곡을 돌아다녀 보자. 햇빛이 비추면 우리의 시선은 바깥 공간으로 무한하게 뻗어 나가는 밝은 투명함 속으로 뛰쳐 나간다. 눈은 우리 자신에게서 떠나고 골짜기의 벽들 사이로 뛰어다니면서 바위를 뒤지고 균열 속의 현란한 색채를 탐색하며, 나비타에 사람들이 골짜기 벽에 새긴 파사드를 찾아다니고 그 모든 것을 통찰로 만들어버린다. 우리의 시선은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고, 그런 통찰로부터 무언가를 추출하지도 않는다. 이와 같은 통찰 앞에서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력을 상실하고, 스스로 직감의 무아경과 하나가 된다.
- 노래가 무엇인지 가르친 것은, 바람과 새의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도록 가르쳐 준 것은 바로 바람과 새였다. 바위에 조각을 새기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은 바람과 강물이었다.
- 페트라를 보러 와서 온갖 설명과 왕, 여왕, 상업제국에 대한 갖가지 추측들을 읽고 나면 마치 무언가가 우리 눈앞을 차단하는 듯한 효과가 발생한다. 작가에 얽힌 일화를 알고 나면 그가 지은 서사시의 마법적인 효과가 사라지는 것과 비슷하고, 베토벤의 성격 분석적 전기를 읽고나면 그가 만든 장엄 미사곡의 초월적인 비상이 평이하게 들리는 것과도 비슷하다. 시각을 담당하는 우리의 눈이 페트라에 와서 경험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시각의 절정이다.
- 우리는 실용적인 존재다.
- 시각을 담당하는 우리의 눈이 페트라에 와서 경험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시각의 절정이다.
- 물과 바람은 정밀하게 재단된 파사드를 뭉개서 추상적인 예술품으로 바꾸고 있다.
- 훗날 과학자들이 사암으로 이루어진 산의 보호 방법을 밝혀낸다 하더라도 바람과 물과 태양은 대협곡에 새겨진 인간의 의도를 끝내 완전히 지워버리고 말 것이다. 그 뒤에도 산들은 정제되지 않은 스스로의 예술성을 추구해 나아갈 것이다.
- 바람과 물과 태양은 대협곡에 새겨진 인간의 의도를 끝내 완전히 지워버리고 말 것이다. 그 뒤에도 신들은 정제되지 않은 스스로의 예술성을 추구해 나아갈 것이다.
미지의 지성
고리들
- 충돌은 싸움을 거쳐야 해결을 보지 않던가. 특히 용기, 명예, 충성, 성실, 사랑의 강도를 놓고 벌어지는 충돌들이 그렇다.
- 어떤 단어의 뜻을 결정하는 것은 단어의 고리이고, 각 단어와 연결되어 있는 단어의 고리들이 그 단어의 의미를 설명해준다. 이런 단어의 체계는 유기적으로 확대되고, 의미들은 사슬처럼 이어진다. 그리고 의미들은 각종 사물, 동물, 식물의 힘과 우리들 사이에서 그런 사슬로 된 울타리를 형성한다
- ‘그것이 무슨 의미지?’라고 의문을 품을 때마다 우리는 끝없이 연결된 고리의 연쇄에 사로잡힌다
- 먼 곳으로 여행을 가면 원시적인 광경들을 보며 기분이 좋아진다
- 결혼반지는 두 사람의 육체가 끊어지지 않는 금속 고리처럼 결혼 계약을 통해 맺어진다는 상징이다
-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 분명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 가운데 가장 순수한 것은 바로 그들 자신의 사진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옛 병원
타이푼
- 지식이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에 대한 믿음, 또는 증거가 있고 증명이 가능하며 조리 있고 일관된 설명에 대한 믿음을 낳는다. 반면 신뢰는 믿음만큼 강력하지만 지식으로부터는 발생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신뢰하는 사람은 부분적이나마 불분명하게라도 알 수 있는 것들만, 혹은 모호하고 잘 알 수 없는 것들만 신봉한다. 신뢰는 상대의 말이나 행동이 이해 불가능하거나 동기나 생각을 알 수 없을 때 생성되는 것이다.
- 그는 자신을 신뢰하기 때문에 미지의 상황이 닥쳤을 때 대처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지식보다는 자신에 대한 신뢰에 더 의지한다. 누군가가 그를 신뢰하기 시작하면 그 신뢰는 더 많은 신뢰를 만들어낼 뿐이다. 다른 사람이 그를 신뢰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힘은 자신에 대한 그의 신뢰를 내부적으로 지배적인 힘으로 만들어주며, 불안함과 망설임을 날려버리게 만든다.
- 신뢰는 두 사람을 더 튼튼하게 연결해준다. 신뢰는 점점 더 강해지고 중독성이 심해지는 에너지다
- 증오는 통제 할 수 없는 힘이다. 증오는 독자적인 추진력이 있다. 증오는 계속 증오할 수 있는 이유나 핑계를 찾아다닌다.
- 신뢰와 공포-증오는 나비의 날갯짓으로 야기된 타이푼처럼 제 스스로 출현해서 힘을 더해간다. 그 두가지는 반대 개념처럼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둘이 대립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상파울로
- 그녀는 필요한 것을 모두 가지고 있다. 원하는 것도 없다. 필요한 것은 사랑할 사람, 사랑할 대상뿐이다.
남자
- 우리가 찾는 남자다움이란 주임, 지배인, 지휘관이나 보호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친구나 동료에게 있다. 남자다움이란 인성 훈련이나 결심으로 간단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윤리적인 특성이 아니다. 남자다움이 생기려면 성적인 흥분을 야기할 수 있는 육체가 있어야 하고, 용감하게 행동할 수 있는 육체적 힘이 있어야 하고,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 남성적인 모험이란 자신이 유혹당한다고 깨닫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 강인한 육체는 기회, 희망, 공포와도 조화를 이룰 줄 알아야 한다. 남성다움에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 이러한 모험심이나 도전의식 없이 단순히 체격을 키우고 근육만 늘리는 행위는 타인뿐 아니라 그 자신도 비인간적으로 만든다.
- 용기란 위대한 희망이나 커다란 위험을 우연히 감지했을 때 몸을 내던지는 상태를 말한다.
- 그의 행동은 머릿속에서 숙고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 행동에서 보이는 생명에 대한 사랑, 열정, 낙관주의는 근원적이고 본능적이었다.
- 우리는 자신의 내부에서 불끈 솟는 용기를 느끼기 때문에 타인의 용기를 알아볼 수 있다. 따라서 신뢰 또한 상대의 용기가 믿음직해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내부에서 용기가 샘솟기 때문에 발생한다. 신뢰에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단념하는 순간 남성다움은 사라진다. 핑계를 준비하면 남성다움은 사라진다. 상업적인 동기 때문에 남성다움이 사라진다.
- 포기는 단념에서 시작된다. 포기는 나태에서 시작된다. 무슨 결정을 내리든 나태라는 요소가 개입하면 포기가 시작된다.
-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가족에 대한 압박과 직업적인 책임감, 경제적인 이유, 장기적인 일자리의 중요성을 핑계로 삼는가! 그들은 그것들이 우연히 노출되었을 때에도 화를 내지 않는 핑계, 희망과 위험이라는 이름의 새가 기회의 하늘을 맹렬하게 날아오를 때에도 황홀감에 눈을 뜨지 않는 핑계로 삼아왔다.
- 보통 남성다움을 다른 것과 교환한다. 젊은 시절 마음에 품었던 성적인 열정, 환희에 대한 열정, 정의를 향한 뜨거운 열정을 부와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는 노년의 차가운 열정과 교환한다! 진심으로 경멸했던 모든 것이 실은 비겁함의 표상이었던 것이다.
- 남성다움이란 우연히 손에 쥔 힘을 이용해서 악운의 불공평함에 맞서는 것이다. 남성다움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정의를 향한 열정이다
- ‘체’는 본래 과라니 족의 언어로, ‘친구’나 ‘동료’라는 뜻이며 과라니족이 멸종된 뒤에도 아르헨티나의 일상어에 남아 있는 말이다. ‘체’는 ‘이봐’,’우와!’,’세상에!’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체는 우리의 친구이며, 동지이다
편지
순수의 노래
- 언젠가는 부모들이 끌고 가던 과거의 의무를 당신이 짊어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탄생은, 즉 당신 내부에 있는 존재의 순결함과 새로움은 과거 및 무책임함과의 연계를 거부한다.
- 행복감은 당신, 낸시 길보니오가 이해도 존재도 예견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발견하게 하는 힘을 준다.
- 재규어는 당신 내부의 야생적이고 당당한 동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 미신과 과오, 탐욕과 절망, 냉소와 야만성, 공모와 배신이 어울리는 참상,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간 종의 역사이다. 그리고 인간들은 역사 속에 깃든 철학이 모종의 양상, 계획, 의미를 따른다고 표방한다. 그러면 역사적인 사건이나 과정들은 이해와 설명이 가능한 것으로 바뀐다. 과거를 돌아보다가 위기, 폭력, 혼돈처럼 보이는 것들이 있으면 유용한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다급한 필요에 의해 활동 영역의 소유권을 주장한 개인들은 이런 식의 역사 인식을 손에 넣을 수 없다. 하지만 지배를 확립하기 위해 행동하는 지배자는 역사철학을 내세운다.
- 사람은 연속성을 깨고 행동을 취한다. 행동은 그 자체로 사람의 내부에 효과와 흔적을 남기고, 유동적인 도해를 남긴다. 그 도해는 안정을 찾으면서 기술과 습관이 된다. 그리고 성공적인 행동이란 사람의 내부를 기쁨으로 채운다. 혹은 최소한의 만족감으로 채운다. 하지만 당신의 행동과 그 영광은 이제 다른 사람들의 것이 된다. 다음 날이 되자 당신의 두 손은 또다시 텅 비어 있다. 행동 그 자체는 불연속성을 낳고, 공허와 순수로 돌아가게 만든다.
- 성공한 것들 중 탐욕과 기만과 배반으로 이루어진 것이 얼마나 많은가! 성공한 것들은 결국 유익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패한 사람을 놓고 보자. 그가 행동에서 유익한 결과를 남기지 못했다면, 결국 결과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는 과거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행동이 틀렸노라고 말하게 된다. 하지만 결과와 연계 짓지 않고 그의 행동만을 보자면, 우리는 아직도 정의를 향한 염원이 그 속에서 불타오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 모든 생명은 죽으면서 실패한다. 모든 생명은 죽으면서 역사의 과정과 분리된다. 만약 창업주가 죽었어도 사업은 저 혼자 계속된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그 창업주는 사업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그 사업은 살아 있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거나 중단당하게 된다. 제어를 포기하고, 분리되고, 죽으면 순수함이 등장한다. 비록 살아 있을 때 범죄자였다 해도 그의 시신만은 정중하게 대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 사람들은 이 세상 어느 곳에서든 삶을 유지하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상황에 대한 질문에 상식적인 품위를 유지하며 답할 수 있다. 침팬지는 침팬지들과 잘 지내고, 사슴은 사슴과, 펭귄은 펭귄과, 돌고래는 돌고래와, 말벌은 말벌과 잘 지낸다. 육식동물이나 홀로 사는 동물도 동종과는 잘 지낸다. 표범은 다른 표범을 잡아먹지 않고 독수리는 다른 독수리를 사냥하지 않는다. 우리는 특별한 의무를 짊어지지 않았다고 확신하고 일생을 보낼 수 있을까?
-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을 때 비로소 무엇이든 행동을 취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아디스아바바
- 귀를 기울이지 않고,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는데도 타인을 인지한다는 건 과연 무얼까?
사랑 중독자
- 열정은 어린 아이를 찾아내고, 노인 안에서 어린 아이를 찾아낸다.
- 셰릴, 크로눌라에서 태어난 당신은 곧바로 고아가 되었다. 어딘가에서 만난 남녀가 옷을 벗고 포옹한 후 몸을 떼었고, 당신은 그 여인을 몸 안에서 조용히 자라기 시작했다. 여인은 당신을 낳은 후 버려두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당신은 부모가 버린 이유를 알지 못한다
- 마약은 사물의 날카로운 면들을 부드럽게 만든다
- 방해할 수 없고, 피할 수 없고, 극복할 수 없고, 회복할 수 없는 것들은 얼마든지 있다
- 도저히 개선할 수 없느 상태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어쩔 수 없는 일들 역시 존재한다. 웃는 것 외에는 다른 대책이 없는 일들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하지만 최소한, 언제든지 웃는 건 가능하다
- 신경증 환자란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앞서 말한 그런 종류의 재난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웃을 수 없다
- 단단해지는 남성의 성기, 혈액과 흥분과 쾌감으로 맥박 치는 여성의 음순과 클리토리스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우리 신체의 일부분이다.
- 성적인 정체성이나 외모, 행동, 언어에 대한 조롱이나 멸시가 가장 마음 아픈 이유는 뭘까? 우리는 이상하다는 얘기를 들으면 특색이 있다는 뜻으로 얼른 바꿔 생각하고, 괴상하다는 얘기를 들으면 예외적이라는 뜻으로 얼른 바꿔 생각한다. 그런데 왜 성적인 문제에 있어서 비정상이라는 말은 곧이곧대로 비정상이라는 뜻으로 들리며 굴욕감을 느끼는 걸까? 우리는 욕망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서로에게 아주 투명하기 때문이다!
- 사랑하는 두 사람은 바보가 된다. 그들의 대화는 아주 유치해지고, 감상은 아주 소박해지고, 행동은 무척이나 경박해진다! 섹스를 하는 두 사람의 손짓과 몸짓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우며, 무의미한 애무의 반복은 얼마나 공허하며, 오르가슴을 향해 쌓여가는 충동은 얼마나 맹목적인가! 그럴 때 우리는 문을 잠그고 장막을 친다. 성인용 영화에 등장하는 섹스의 동작들은 하나같이 안무가 스며 있어 우아하고 순서가 맞는다. 따라서 탐욕스러운 충동이 투명하게 드러날 여지가 없다.
- 우리는 웃음을 통해 서로에게 투명해진다. 터져 나오는 웃음은 당신이나 나 개인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웃음은 조약돌을 호수에 던질 때 발생하는 물결처럼 퍼진다. 개인의 구별은 그 물결 속에 녹아버리는 것이다.
- 증오는 자신의 정체성에 경계선을 긋는다. 증오하는 사람이 누군지 내게 말해보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 내게 말해보라. 그러면 나는 예전과 달리 당신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다.
이해
- 하기아 소피아는 지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결국은 영광을 되찾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숙명을 지녔다는 통찰을 제시한다. 하기아 소피아는 물질이 번쩍이는 빛과 광채로 변신하는 장소이다.
- 수많은 전쟁과 학살이 지나가고, 법과 관리자가 바뀌고, 황제와 영웅들이 영광과 같은 갈채로 뒤덮인 전투를 벌이고, 여러 종교가 그곳을 지배했다. 오늘날 남은 것은 건물 그 자체뿐이다. 이 건물은 약 1천 회의 지진을 겪고도 살아남았다.
- 무스타파와 작별할 시간이 되었다. 그는 차가 담긴 컵을 손에 들고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차를 마셨다. 나는 급하게 떠나고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무시무시하고 신비로운 연회
소멸했던 종교의 회구
- 신들은 다른 신을 믿는 정복자들의 칼 앞에 죽었다.
랄리벨라
부두
- 황홀경 속의 폭발적인 움직임을 행복에 도달하는 상승과정으로 묘사하는 중요한 고대문학이 있다. 이때 말하는 행복이란 충만, 성취, 최종적인 상태, 영속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그런 상태를 유지 못하게 만드는 불안정이나 틈새는 곧 결함이다. 신은 그런 행복이 구체화된 존재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름다움이나 진실이나 덕을 더 이상 믿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종류의 행복을 믿는 행위를 그만두었다.
- 이제 행복하게 살라는 얘기는 쾌락적인 방종의 이미지만 불러일으킬 따름이다.
탈주
침묵
- ‘DENKEN IST DANKEN.’ 하이데거가 한 말로서 ‘사유는 곧 감사’라는 뜻이다. 감사하다는 말은 주어진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이고, 그것을 꼭 붙드는 것이고, 다른 이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그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눈으로 보고 경험한 것, 즉 받았던 것을 말하고 쓰는 행위는 사유와 감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사려 깊은 말과 글은 자료, 다시 말해서 받은 것에 내재된 힘, 구조 전부, 아주 세부적인 면모와 내적인 관계들을 밖으로 표현하고 그것들을 다른 이와 나눈다.
- 사려 깊음이란 받은 것에 마음을 열면서 시작된다.
- 사려 깊은 말을 하면 자신이 봄으로써 받았던 것을 다른 이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길을 추구할 뿐이다. 사려 깊은 글을 쓰면 자신을 향한 시선을 거두고 특정 인물이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한 글이 된다.
- 하지만 감사(사려 깊음)는 침묵하게 할 수도 있다. 당신이 밤에 산에서, 사막에서, 얼음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외로움과 육체적인 고통에 시달리다가 우연히 망각을 좇던 한 사람을 만나 반응을 보이려 할 때 그런 일이 발생한다.
- 우리는 목표로 미래를 장식하고, 그것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눈앞에 미래를 그린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세쿼이아의 존재감 앞에서는 그것들이 사라져버린다.
- 조용히 하늘을 향해 상승하는 산을 오르느라 느꼈던 피로함은 노동과 정반대이다.
- 일단 산을 떠나면 아무리 묘사해보려 해도 그 순간을 복구할 수는 없다. 우리는 산에 갔건만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한 것이다.
- 자기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왜 조은지, 얼마나 좋은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언어를 통해 묻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 현재의 황홀경은 사라져버린다. 가장 강렬한 즐거움을 느낄 떄 우리의 머리는 텅 비고, 자아는 소멸해버리고, 탐욕스러운 단어의 노동은 잠잠해진다.
- 우리가 제일 고마벡 여기는 극단적인 경험들은 침묵 속에 숨을 것이다. 침묵은 공허하지 않다. 그 안에서 부족하고 필요한 부분은 감사가 차고도 넘치게 채워준다. 감사는 너그럽다.
- 진실이란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넘어선 것을 보는 것이며, 차마 보기 힘든 것을 보는 것이며,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넘어선 것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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