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ㅅㅂ일상

추억내음 : 냄새에는 기억이 깃든다.

by 이승보 2022. 12. 16.
728x90

2020년 2월 7일 네이버블로그 작성 글

 

#1

코로나 바이러스로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 않던 나도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는 않아서 오늘은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마스크 포장을 뜯고 쓰는 순간 잊고 있던 기억이 냄새를 맡듯 머리 속을 덮쳤다. 작년 이맘 때쯤 코로나가 아닌 미세먼지가 한창 사회 이슈일 때 사람들은 네이버 검색창에 미세먼지 농도를 검색하곤 했다. 그 당시에도 나는 미세먼지 따위보다는 내 안경에 끼는 습기가 불편해서 마스크를 끼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만나고 있던 그녀는 미세먼지에 매우 민감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내 건강을 걱정해 마스크 좀 쓰고 다니라며 만날 때마다 나에게 마스크를 주곤 했다. 그녀와 같이 다닐 때면 마스크를 쓰는 시늉을 했다. 그 때 처음 새 마스크의 냄새를 맡았다. 뭔지 모를 화학스러운 냄새와 답답한 공기, 퀘퀘한 입냄새 등이 어우러져 만든 냄새의 첫 느낌은 불쾌함이었다. 곧 그 느낌은 '혹시 내 입냄새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불쾌함에서 민망함으로 변했다 '어떻게 이런 입냄새를 지금까지 버티고 나와 뽀뽀를 했던 거지' 하고 그녀에게 감탄과 민망함을 동시에 느꼈다. 하지만 그 후 알게된 그 냄새는 내 입냄새가 아니라 새 마스크의 냄새였다. (물론 내 입냄새도 어느정도 있었으리..) 나는 평상시에는 마스크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녀와 만날 때면 마스크를 써야만 했고 그 때마다 새 마스크의 냄새에 익숙해져 갔다. 오늘 나는 1년만에 새 마스크의 냄새를 맡게 되었고 지나간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기억은 좋고 나쁨을 떠나 누군가 내 건강을 걱정하며 마스크를 쓰라고 하는 기억이다.

 

#2

피자를 먹고 나면 손에 치즈의 느끼함과 토핑의 짭쪼르함이 배인다. 비누로 손을 씻어보아도 그 냄새는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수능을 치고 그저 여유롭고 즐겁기만 하던 고3 끝무렵에 만났던 그녀는 피자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동네가 가까워 아르바이트가 끝난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주는 것이 일상적 데이트의 한 종류였다. 그녀는 온 몸에 피자냄새가 베어있었고, 손에도 그 피자냄새가 남아있었다. 그녀는 그 냄새가 부끄러웠는지 향수를 뿌리고 손에는 핸드크림을 잔뜩 바르고 퇴근을 했다. 그녀의 손을 잡고 15분도 걸리지 않는 그녀의 집으로 가며 나누는 이야기에 그저 행복했다. 그녀를 데려다 주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늘 나의 손 냄새를 맡았다. 내 손에서는 방금 맡잡고 있던 그녀의 온기 대신 냄새가 남아 있었다. 피자의 느끼함, 짭쪼름함과 함께 향이 강한 핸드크림의 냄새가 뒤섞여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냄새는 맛있었다. 몇 년에 한 번씩 가끔 그런 냄새를 맡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손에 배인 피자의 냄새에서 예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동네 친구를 데려다 주며 느끼던 쌀쌀한 밤공기와 풋풋함, 왠지 모르게 정겨운 기억이다.

#3

대학시절 나는 세탁을 하고 난 후에는 항상 섬유유연제로 다우니 에이프릴 후레쉬를 듬뿍 썼다. 하늘색 통의 다우니의 향기가 가득 배인 세탁물은 내 옷에서부터 내 방에까지 침투를 했다. 그리고는 그 방에 살고 있는 내 몸 곳곳에 침투를 했다. 수업에 늦어 헐레벌떡 뛰어 강의실에 도착하면 친구들은 내게 냄새가 난다고 했다. 처음에는 내 땀냄새인가 보다 하고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들은 땀냄새치고는 너무 향기롭다는 말을 했다. 그런 상황이 몇 번이나 반복되고 우리집에 놀러온 친구를 통해서 그 냄새가 내 땀냄새가 아닌 다우니 향기인 것을 알았다. 나는 익숙해져 느껴지지 않던 다우니 향이 내 몸 깊숙이 숨어 있다가 내 몸의 열기로 인해 밖으로 빠져나갔던 것이다. 길에서 다우니 에이프릴 후레쉬 향을 맡을 때면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한창 옥탑방의 옥상에서 빨래를 널고 수업시간에 늦지 않기 뛰어가던 내 모습이, 대학생 시절의 게으른 늦잠과 밤을 지새며 과제를 하던 기억이다. 그 때 그 친구들은 다우니 향을 맡으면 나를 떠올리고 있을까?

#4

인도의 천연 똥색 헤나에서는 그 특유의 냄새가 있다. 흙과 풀의 냄새같기도 한 갈색의 냄새지만 불쾌하지 않은 따뜻한 느낌의 냄새이다. 그 냄새를 맡는 것은 헤나를 할 때 뿐이겠지만 그 냄새에는 강렬한 기억이 있다. 잊을 수 없는 그 냄새는 대학시절 내 얼굴에 헤나를 하고 다닐 때의 기억이 난다. 그 냄새에는 다른 이들에게는 꺼내고 싶지 않은 달달한 사랑얘기가 담겨 있다.

#5

'냄새'는 '코로 맡을 수 있는 온갖 기운'이고, '향기'는 '꽃, 향, 향수 따위에서 나는 좋은 냄새'라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그렇다면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냄새'에도 단어를 만들어주고 싶다. 나는 그런 냄새를 '추억내음'이라 하고 싶다.

728x90
반응형

댓글